DATA

당신의 참된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 합니다.

자료실

MAUMPULGY
  • 정신분석의 내용들
CUSTOMER CENTER
TEL031-782-5195

- 월 ~ 금 : 오전 9시 ~ 오후 9시
- 토요일 : 오전 10시 ~ 오후 6시
- email : jiyueun@naver.com

정신분석의 내용들

DATA
제목 경계선 환자들의 보복충동의 변천





임상사례를 들어보겠다: 한 청소년 gang이 부랑자 노인에게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힌 후 그 노인이 불타는 것을 웃으면서 바라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듣는 이의 인간적 도덕심은 크게 충격받을 것이다. 만약 이 청소년 gang이 어떠한 후회나 죄책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충격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들은 부랑자를 중세시대에서나 그렇게 하였듯이 고통을 주면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무생물과 같이 다루었다.
두 번째 사례 : 한 성적 사디스트가 누군가 자신을 제지해 주기를 바라면서 거울에 립스틱으로 메시지를 남겼으나 그는 체포될 때까지 성적학대와 살해행위를 계속하였다.
 
많은 사례들에서, 이러한 “잘못된” 행동은 보복충동-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람들의 과거를 조사하여보면 그들이 의존적이고 무력하였던 유아기에 잔인하고 야만적이며 고문적인 학대를 받았음을 알게되고 그들의 잔인한 범죄도 이러한 것들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들은 인간의 가장 깊고 가장 오래된 반응인 보복충동-자신이 상처입었을 때 상해를 가하려고 하는 자동적 방어반응-을 실행하고 있다.
누가 혹은 무엇이 이제 이것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가? 시한폭탄을 장착시킨 과거의 유아기 때 아이가 겪은 상황 때문인가 혹은 그 시한폭탄을 폭발시켜버린 (그 아이가 자라서 된) 성인을 비난하여야 하는가? 성인은 자신의 과거를 자신이 현재 행한 행동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할 수 없다.(그러나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매번 이렇게 하는 것을 듣지 않는가?) 그러나 이 사례에서는 과거의 상황과 상관 없이 현재의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끔찍한 행동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으로 철수하는 방법으로 이런 닭과 달걀의 딜레마와 같이 복잡하고 모호한 이슈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을 달래어 주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고문을 가한 부모들도 역시 같은 보복충동으로 응징한 것이라면 그들은 더 책임이 있는가? 아마도 사회의 기관들이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여 아이가 자라 부랑자를 불태워 죽이는 것을 막도록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 귀류법적 논증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많은 비극들은 어린 발달의 시기에서 훗날 폭발하게 될 시한폭탄을 장착하게 된 아이들에 의해서 발생한다. 비록 아이들은 자신에게 폭탄이 심어지게 되는 것을 전혀 통제할 수 없으나 나중에 자라서 그 폭발의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된다.
 
발달이 정지된(arrested) 경계선 환자에 대한 정신분석적 논문은 우리에게 기원후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그 안에 묻히고 정지된(arrested and fixed) 폼페이의 유적을 보는 것과 유사한 개인에서의 이른 시기의 발달단계를 보는 창을 제공하여 준다. 폼페이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그 당시의 문명의 여러 면들- 종교, 문화, 예술, 예능-을 확인할 수 있다. 경계선 환자에게서는 우리는 굵은 양각(bold relief)으로 된 나중에 도덕성으로 발달하게 되는 심리내적 구조의 전조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경계선 환자에게서는 보복충동이 행하여지던 이른 문명 사회으로 회귀하는 것 같은 결과를 남긴 이른 발달시절에서의 중대한 결함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에서는 보복충동은 내재화되고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해-프로이트와 니체가 현대인에 대하여 풍자하였듯이- 행하여 졌다. 경계선 아이는 자신의 의존과 무력성을 이용하는 부모를 가장 역겹고 잔인한 것으로 경험한다. 이것은 유기 우울로 이어지고 이것의 핵심적인 부분은 격노(rage)이다. 부모를 필요로 하고 또한 부모를 두려워 하므로 자신의 상처와 격노를 표현할 수 없기에 그는 그것을 공격자와 동일시의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내재화함으로서 그것을 숙달하려고 한다. 환자는 공격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는 자신을 공격함으로서 자신의 격노를 방출하고 부모에게 복수하는 것을 환상하며 그들의 소유물을 부수며 보복충동을 만족시킨다. 바로 이때에 보복충동에 숨어있는 착취하는 대상을 향한 살해충동에 대한 방어가 일어난다. 이것은 보상적 환상으로서 만약 그가 자신의 슬픈 상황을 충분히 극화한다면 그의 부모가 응답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보복충동의 숙달을 실패하게 만들며 결국 자신(self)에 대한 파괴적인 행동화(acting out)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공격성은 자기-주장성, 적응적 행동 안에서 자유롭게 방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역동이 내가 치료한 모든 경계선 환자의 징후학적(symptomatology) core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더 나아지기 (get better)위해서가 아니라 회복하기(get back)을 위해서 복수를 원한다. 두 번째 중요한 지점은 그가 더 나아질 것인가 아니면 회복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에 있다. 그는 둘 다를 가질 수는 없다. 그의 공격성이 복수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한, 정신적 구조를 건설하는 것에는 사용될 수 없다. 그는 복수의 생각을 포기하여야만 하며 그것은 자신의 보복충동을 숙달하고 자신의 공격성을 풀어주어 자신의 self-image를 공격하기보다는 지원하게 만들어야함을 의미한다. 자신의 복수를 위한 보복충동을 극복하고 숙달하는 것으로부터 객관적인 도덕감각의 기초공사를 완료하게 된다. 그는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보복의 환상적 쾌락을 보다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서 포기하고 자신의 성장을 지원하게 된다. 그는 현재의 불편함을 미래의 목표를 위해서 인내하게 된다.
 
그 복수심 가득찬 충동들에게는 무엇이 일어나는가? 일부분은 심리 치료의 상황 속에서 방출되고 일부분은 승화되어 개인적 의미를 가지는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이어지는데 - 그것은 가난한 사람, 침해당한 사람, 장애인, 사회나 공공기관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을 위한 활동을 말한다. 때때로 이러한 것들은 직업 정체성과도 이어지는데 - 정치인의 부패를 취재하는 리포터, 약자와 힘 없는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 자본가들과 싸우는 노동운동의 지도자, 사회의 악을 폭로하는 작가 등이 이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