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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분석의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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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의 내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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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엇이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치유하는가?







비슷한 임상적 현상들이 발견될 때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그것들을 구별하기 어려울 수가 있는데 예를 위니컷의 거짓자기 증후군과 코헛의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같은 임상적 현상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애적 성격장애 환자와 치료적 동맹을 맺는 것에 대해서 고려할 때 - 정신분석적 기법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이 어떻게 그 결과를 낼 것이가에 대한 개념이기도 하다 - 우리는 거대한 논란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아마도 임상적 현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할수 있을지라도, 이러한 관찰에서 얻을 수 있는 추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자기애적 인격장애 환자가 분석가능한가? 같은 것들이다.


전능감과 자기-충족의 환상으로 방어되는 조숙하고 연약한 자기감이 존재하는 한, 치료적 동맹은 불가능하다.Zetzel (1956), (1958)은 치료적 동맹을 맺을수 있는 능력을 성숙한 대상관계의 능력과 연결시켰다. 좋은 치료적 동맹을 결성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분석가를 분리된 인물로서 지각하고 분석가가 고유의 분리된 개인이라는 인식에서 전이신경증을 분리시킬 수 있는 성숙한 인격의 부분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이러한 개념은 Sterba (1934)와 Bibring (1937)이 말한 '실제'의 인물로서의 분석가와 동일시 할수 있고 분석가와 정신분석의 치료적 목적을 공유할수 있는, 환자의 자아의 상대적으로 건강한 부분에서의 분열(split)의 개념에 기초한다. 치료적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이 능력은 분석가능성과 동일어로서 여겨졌다(see also Greenson, 1965).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치료적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능력은 곧 분석가의 분리됨현실성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분석가의 현실성은 분석가로서와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느낌을 말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적어도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분석과정의 도입부분에서, 상담실에는 마치 한사람만 존재하는 것과도 같은 착각이 존재하게 된다 - 분석가가 없거나 아니면 환자가 없거나. 치료적 동맹을 대신하는 것은 이상화된 분석가의 존재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마법적인 믿음이다 - 환자들은 이상화된 캐릭터들을 활성의 동일시가 아닌 마법적 과정으로서 획득한다. 한 환자는 이를 묘사하기를, 올바른 분석가를 고르는 것은 올바른 클럽에 참여하는 것과도 같다 - 접촉성으로 인해 개인의 정체성은 파생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화된 분석가의 정반대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이는 격심한 평가절하이다. 분석가가 말하는 것들은 부정되고 무시되는데, 마치 분석가의 말은 가치가 없는것처럼 여기진다. 나는 자기애적 방어를 아무것도 드나들수 없는 고치로 묘사하였다. 분석가는 자신의 명료화와 해석의 시도들이 무시되는데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어떤것도 와닿지를 않는다. 치료적 동맹이 상대적으로 부재한 가운데에서는 분석가의 관찰자아와 동일시하는 환자의 능력에 의지할수가 없다. 진정한 동일시는 침범당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에 잠식되거나 혹은 탈취당하는 것의 공포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에 의해 튕겨져 나간다. 나는 위니컷(1969)가 했던 말속에서 그 역시도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환자가 점차 정신분석적 기법과 세팅을 믿으면서 신뢰가 생겨나고 이에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전이가 나타나기를 믿고 기다리며 해석하는 것을 자제하게 된것은 최근의 일이다.' 해석은 환자에게는 자신의 자율성을 침해나는 위협이 된다. 분석가에 지식에 대해서 품게되는 envy 역시도 해석을 거절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치료적 반동들이다 (Modell, 1965). 여기에서 분석가의 해석은 수용되나 단지 환자의 상태를 더 나쁘게만 만들 뿐이다. 분석적 세팅은 환자가 분석가와의 의사소통을 할지말지를 추가적으로 더 검토하고 난 후에서나 수용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의문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바로, 치료적 동맹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치료적 과정은 분석가의 해석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전-언어적 과정의 결과물인가에 대한 것이다. 안나 프로이트는 전-언어적 과정에 주로 의존하는 분석의 치료적 결과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말하길(1969), 관찰자에게 가장 먼저 놀랍게 다가오는 것은 분석가가 다루고 있는 심리적 내용물의 유형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구조화된 성격주조물 내에서의 다양한 agency들 사이의 불협화음을 탐색하는 대신, 분석가는 카오스적이며 미분화된 상태에서 최초의 심리적 구조물들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사건들에 신경을 쓴다. 이는 심리내적 갈등들의 시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심리적 갈등들은 항상 정신분석의 목표물로 간주되어 왔으며,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것들과 환경적 영향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관계라는 보다 알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이는 성격이 형성되었던 가장 근본적 힘들의 영향들을 취소하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반대적 역동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함을 의미한다.


안나가 여기서 말하고자 한 첫번째 이슈는 전이 신경증을 형성할 능력이 있는 환자와의 정신분석에서 얻어진 결과물과 자기애적 성격장애 환자와의 치료적 동맹을 통해 정신분석의 결과물로 얻어진 것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별도의 다른 이슈가 하나 더 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에서 정신적 성장과 성숙을 촉진하고 심리적 구조의 분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신분석적 과정에서 무엇인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은 비록 정신분석의 과정을 통해서 중대한 발달을 성취할 수도 있지만 신경증 환자가 전이신경증을 통해서 그들의 신경증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만큼의 성취는 이루지 못할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아마도 인격적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있어서 치유를 가져다 주는 요소는 다른 것에 있을 수도 있다; 치유는 (위니컷의 이론적 견해로서) holding 해주는 환경으로서의 분석적 세팅 그자체에서 촉진될 수도 있다.분석가가 환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알아봐주는 능력에서 뿐만 아니라 분석가의 정확한 판단에서 오는 안정감과 일관성에서 숨겨져 있는 만족감을 환자는 경험할 수 있다. 환자와는 달리 분석가는 환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오랜시간동안 일관성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스피츠(1965)가 말한 엄마가 아이의 미소에 반응하는 '미러링(mirroring)' 기능이다. 이것이 바로 (Buber의 개념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페렌치의 의견처럼, 어떠한 특정행동의 파라미터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분석가는 환자에 대한 자신의 깊은 애적이나 친밀함을 굳이 보여주지 않더라도 환자는 분석가라는 대상과의 굳건한 유대감 속에서 자신만의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다.분석적 세팅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과정은 매우 조용이 움직여서 분석가는 마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낄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속에서 환자는 마치 코헛이 이상화전이라고 표현한 것과도 같은 구조적 성장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치료적 동맹보다 앞서서 일어나는 단계이다.


이러한 이상화 단계는 보다 부정적인 전이 관계에 길을 터주게 되며 이러한 부정성 그 자체는 환자의 개별화의 감각을 지탱해주게 된다 (위니컷, 1969). 분석가를 분리된 개인으로 인식하는 지각이 늘어남에 따라 치료적 동맹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이에 상응하여 발생하며 전이신경증을 일으키는 작은 파편들도 나타나기 시작할 수 있다.





- 출처: Anold H. Model / ' A Narcissistic Defence Against Affects and the Illusion of Self-Sufficiency' 中